항상 조기 취침이 정답일까?
아이의 수면 문제를 들여다 보면 "몇 시에 재우는 게 가장 좋을까요?"라는 질문을 자주 봅니다. 많은 부모들은 일찍 자는 것이 무조건 옳다고 믿고, 저녁 8시 이전에 아이를 재우기 위해 애를 씁니다. 하지만 과연 모든 아이에게 ‘조기 취침’이 최선일까요? 아이의 기질, 생활 패턴, 수면 욕구는 제각기 다릅니다. 따라서 한 가지 정답으로 ‘이 시간에 자야 한다’는 공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에게 맞는 수면 적기를 파악하고, 그 시간에 맞춰 수면 루틴을 형성해 주는 것입니다.
수면 ‘적기’란 무엇일까?
수면 적기란 말 그대로 아이의 생체리듬과 피로 축적 정도가 최적으로 맞아떨어져 자연스럽게 잠에 드는 시점을 말합니다. 이 시간은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아이의 발달 단계, 하루 활동량, 스트레스, 햇볕 노출, 식사 시간 등의 변수에 따라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낮에 많은 활동을 하고 햇볕을 충분히 쬔 아이는 이른 저녁 시간부터 졸리기 시작할 수 있지만, 활동량이 적고 실내 생활이 많았던 아이는 상대적으로 늦은 시간까지 각성 상태가 유지되기도 합니다.
지나치게 빠른 취침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
조기 취침을 강제했을 때 나타나는 대표적인 문제 중 하나는 잠들기 전 긴 이완 시간입니다. 아이가 피곤하지 않음에도 억지로 눕게 되면 누운 채 뒹굴거나, 장난을 치거나, 부모에게 계속 말을 걸며 잠들지 못합니다. 이 시간이 반복되면 아이에게 ‘침대=잠 안 오는 장소’라는 잘못된 연상이 생기고, 이는 수면 거부나 불면 증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또한 너무 이르게 잠들게 하면 새벽에 일찍 깨어나는 조기 기상 패턴이 형성될 수 있습니다. 특히 아이가 오전 5시 이전에 깨어 자꾸 놀자고 하거나 짜증을 낸다면, 오히려 잠든 시간이 너무 이른 것은 아닌지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반대로 아이가 충분히 피로한 상태로 잠자리에 들었다 해도, 수면 시작 시간이 지나치게 늦어질 경우 수면의 질이 떨어지거나, 다음 날 피로감이 누적될 수 있습니다. 생체 시계는 오후 8시에서 밤 10시 사이를 ‘수면 적기’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특히 초등학생 이하 아이들은 밤 9시 전후가 이상적인 적기일 가능성이 큽니다. 늦은 수면은 성장호르몬 분비 지연, 감정 조절 어려움, 주의력 저하 등 다양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늦은 취침도 피해야 하지만, 무조건 이르게 재우는 것 역시 정답은 아니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아이의 수면 적기,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 졸린 신호를 관찰하세요
아이가 하품을 하거나 눈을 비비고, 멍한 표정을 짓는 순간이 ‘적기’의 시점일 수 있습니다. 이 시점을 놓치면 다시 각성 상태로 되돌아가 수면 유도가 어려워집니다.
- 자연스러운 패턴을 일주일간 기록해보세요
일주일 정도 아이의 수면 시간, 깨어나는 시간, 낮잠 여부 등을 기록하면 일정한 흐름이 보입니다.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상적인 취침시간을 찾아보세요.
- 기상 시간부터 역산하기
아이가 아침 7시에 일어나야 한다면, 최소한 밤 9시에는 잠들어야 수면 시간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산할 때는 실제 ‘잠드는 시간’이 아니라 침대에 누운 시점부터 잠들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고려해야 합니다.
아이의 생체리듬에 맞는 취침시간을 정했다면, 이를 지키기 위한 루틴이 매우 중요합니다. 취침 1시간 전부터는 밝은 조명을 줄이고, 과한 활동이나 스크린 노출을 삼가며 몸과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따뜻한 물로 샤워하거나, 그림책을 읽어주거나, 조용한 음악을 틀어주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일관성입니다. 주말과 평일의 수면 시간이 크게 차이 나면 생체리듬이 쉽게 흔들립니다. 가능하면 30분 이내의 범위에서 유지하세요.
조기 취침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조기 취침이 항상 정답은 아니지만,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 수면 부족이 누적된 경우
일정 기간 동안 수면시간이 부족했거나 잦은 야경증, 악몽 등으로 잠을 깼다면 일시적으로 일찍 재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 성장 급등기
유아기, 초등학교 저학년 등 성장호르몬 분비가 활발한 시기에는 이른 시간에 깊은 수면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 아침 일찍 등원이 필요한 경우
기상 시간이 고정되어 있다면, 수면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일찍 자는 것이 현실적인 선택일 수 있습니다.
‘일찍 재우는 것이 무조건 좋다’는 믿음은 아이마다 다른 생체리듬을 고려하지 않은 일종의 일반화입니다. 중요한 것은 조기 취침이 아닌, 아이에게 맞는 수면 적기를 찾아 안정적인 루틴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아이의 신호를 읽고, 생활 패턴을 관찰하며, 부모가 유연한 사고로 접근할 때 아이의 수면의 질은 자연스럽게 향상됩니다. 조기 취침이라는 ‘정답’에 매달리기보다는, 아이만의 ‘리듬’을 존중하며 건강한 수면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더 현명한 양육 방법입니다.